
미국 학교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은데 홈커밍 퀸이라니, 아침부터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소식이 학부모님으로부터 들려왔다. 미국 공립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얼마 전 미국으로 떠난 한 학생이 입학하자마자 ‘홈커밍 코트(Homecoming Court)’ 후보에 올랐고, 결국 홈커밍 퀸으로 선정되어 지역 신문에까지 실렸다는 이야기였다. 아직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바쁠 시기일 텐데, 짧은 시간 안에 또래 학생들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대견하다.
사실 처음에는 ‘홈커밍 코트’라는 표현이 다소 생소했다. 자세히 알아보니, 미국의 가을을 상징하는 대표적 행사인 홈커밍(Homecoming)에서 학생들이 직접 뽑는 명예의 자리였다. 우리가 영화에서 자주 보던 바로 그 ‘홈커밍 퀸’과 ‘홈커밍 킹’을 선정하는 과정이다. 졸업생과 재학생이 함께 모여 미식축구 경기를 즐기고, 퍼레이드와 댄스파티가 이어지는 학교 최대 축제에서 가장 주목받는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무대에 외국에서 온 교환학생이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에서 접하는 미국 소식은 주로 총기 사건이나 범죄 같은 무거운 이야기들이 중심을 이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남곤 한다. 하지만 실제 미국은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도시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교외 지역은 의외로 차분하고 조용하며, 이웃 간의 정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일상이 중심이 된다. 무엇보다 많은 미국인들은 ‘평등’, ‘자유’, ‘인권’이라는 기본 가치를 여전히 삶의 토대처럼 여긴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무상으로 운영되고, 홈스테이 가정들이 자원봉사 형태로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 가치의 연장선에 있다. 낯선 학생을 가족처럼 맞이하며 문화를 함께 나누는 경험을 소중한 삶의 배움으로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 한국 학생들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이 있다. 바로 K-팝과 한류 문화가 만들어 낸 글로벌 영향력이다. 동양인이 거의 없는 지역에 배정된 학생들은 그 자체로 큰 관심을 받는다. 넷플릭스 드라마 속 신입생이 등장한 듯 학교 분위기가 들썩이고, 지역사회도 자연스럽게 함께 주목하게 된다. 이번 홈커밍 퀸 선정 소식 역시 한국 문화가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큰 호감과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제 한국의 청소년들은 단지 ‘외국에서 온 학생’이 아니라, 세계가 반가워하는 문화적 존재감 그 자체가 되고 있다.
올해 있었던 토론토 한인축제 역시 같은 흐름을 증명했다. 이름만 보면 한국인만의 행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현장을 채운 이들의 상당수는 캐나다인과 다양한 인종의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한국 음식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섰고, K-팝 무대 앞에서 환호하며, 한복 체험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도 기꺼이 대기했다. 한국 문화가 이제 특정 민족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자연스럽게 누리고 즐기는 보편적 문화가 되었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준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늘 말한다. “시야를 넓히고, 자신만의 세계를 직접 만들어가라.”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문제집을 한 장 더 풀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다. 그 노력 또한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정답이 적힌 문제지 너머에도 인생의 기회는 무수히 넓게 펼쳐져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자신의 재능이 가장 자연스럽게 빛날 수 있는 무대를 세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준비된 용기를 가진 학생들에게 훨씬 더 가까이 다가온다.
한국을 바라보는 전 세계의 호감과 관심, 한류가 만들어낸 긍정적인 영향력은 지금 우리 세대가 가진 강력한 자산이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학생들은 스스로 새로운 길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공립학교의 낯선 무대에서 당당히 홈커밍 퀸으로 호명된 한 학생의 이야기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세계는 생각보다 넓고, 도전할 수 있는 무대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 지금과 같이 한국 학생들을 향한 환영의 분위기가 이어지는 이 시기에, 두려움보다 용기를 선택하는 이들이 더 많은 기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