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캐나다 재무부 프랑수아 필립 샴페인 장관, 멜라니 조리 산업장관, 패티 하이두 노동가족장관, 에반 솔로몬 남부 온타리오 경제개발청 담당장관 [사진출처:Youtube @cpac]
9월 8일부터 15·25·50% 차등 관세…미국의 50% 관세에 ‘달러 대 달러’ 대응
철강·알루미늄·전자제품·가전·유제품·의류·생활용품까지 광범위 타격
기업·근로자 피해 막기 위해 75억달러 추가 지원…EI 확대·기업 유동성 공급
미국과 캐나다의 무역전쟁이 결국 소비자들의 장바구니까지 파고들게 됐다. 캐나다 정부가 미국의 50% 고율 관세에 맞서 276억 캐나다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한다. 대상은 철강과 알루미늄부터 전자제품, 가전제품, 유제품, 의류, 생활용품 등 700여개 품목에 달한다.
캐나다 재무부는 25일 프랑수아 필립 샴페인 재무장관과 멜라니 졸리 산업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한 대응책을 발표했다. 새로운 보복 관세는 9월 8일 오전 0시1분부터 발효되며 품목별로 15%, 25%, 50%가 차등 적용된다.
이번 조치는 미국이 지난 22일부터 캐나다산 제품 276억달러어치에 50% 관세를 부과한 데 대한 사실상의 ‘달러 대 달러, 세율 대 세율’ 맞대응이다.
캐나다 정부는 미국과 무역협상을 진행했지만 미국 측이 막판에 캐나다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조건을 요구하면서 협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샴페인 장관은 “캐나다가 이 무역분쟁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세 대상은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접하는 상품까지 광범위하다. 50% 관세 대상에는 철강·알루미늄 관련 제품을 비롯해 일부 전자제품과 공구, 가구, 화장품, 생활용품 등이 포함됐다. 플라스틱 주방용품과 나사·볼트·너트, 합판, 비디오게임 기기, 골프·스포츠 용품 등도 세부 품목에 따라 고율 관세를 적용받는다.
25% 관세 대상에는 치즈 등 일부 유제품과 생선·해산물, 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 일부 철강·알루미늄 파생제품 등이 포함된다. 의류와 섬유, 종이제품 등도 상당수 관세 대상에 들어갔다.
일부 에어컨과 공조장비 등에는 15% 관세가 적용된다. 캐나다 정부의 공식 품목표는 수십 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다. 다만 모든 미국산 제품에 일괄적으로 50%가 붙는 것은 아니며 제품별 관세분류(HS Code)에 따라 세율이 달라진다.
특히 이번 조치가 캐나다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주목된다. 미국산 냉장고와 세탁기, 의류, 가구, 화장품, 식품 등에 관세가 붙으면 수입업체가 비용 일부를 판매가격에 전가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산 제품을 많이 판매하는 유통업체 역시 캐나다산이나 유럽·아시아산 제품으로 공급처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빨라질 수 있다.
반대로 캐나다 정부는 이번 관세를 통해 미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캐나다 기업들이 자국 시장에서 미국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다만 미국과 캐나다의 산업이 깊게 연결돼 있는 만큼 보복 관세가 오히려 캐나다 기업의 원가를 끌어올리는 ‘부메랑’이 될 위험도 있다.
이에 정부는 관세 발표와 동시에 75억달러 규모의 기업·근로자 지원 패키지를 내놓았다. 이는 미국 관세가 시작된 이후 이미 마련한 약 250억달러 규모 지원책에 추가되는 조치다.
지원책에는 관세 피해 기업에 대한 금융·유동성 지원과 수출시장 다변화 지원, 고용보험(EI) 강화 등이 포함됐다. 정부는 기업들이 미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해외시장을 개척하도록 Canada Strong Diversification Fund도 가동할 계획이다.
이번 보복 관세는 단순한 관세 맞대응을 넘어 캐나다의 ‘미국 의존도 낮추기’를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캐나다와 미국은 자동차와 철강, 에너지, 농업, 식품, 제조업에서 수십 년 동안 하나의 공급망처럼 움직여왔다.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매기면 미국 기업이 타격을 받지만 동시에 이를 원료나 부품으로 사용하는 캐나다 기업도 비용 증가를 피하기 어렵다.
때문에 캐나다 정부도 무차별적인 전면 관세보다는 미국 관세로 직접 피해를 보는 산업을 중심으로 대응 품목을 선정했다. 새 관세는 2024년 기준 캐나다의 전체 미국산 수입 가운데 약 4.5%에 해당한다.
결국 캐나다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9월 8일 이후 미국산 제품의 가격 변화다. 특히 가전제품이나 가구처럼 가격이 높은 상품을 구입할 계획이 있다면 원산지와 관세 적용 여부에 따라 가격 차이가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캐나다산이나 관세 대상이 아닌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에는 이번 추가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번 조치는 캐나다가 미국의 관세 공세에 더 이상 협상만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신호다. 미국이 캐나다산 제품에 276억달러의 관세 장벽을 세우자 캐나다도 정확히 같은 규모로 맞받아쳤다. 이제 관세전쟁은 철강과 자동차 같은 산업 현장을 넘어 스마트폰·가전·치즈·의류 등 평범한 소비자의 생활 영역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뉴스/사진: 밴쿠버교차로>